2021년의 우리들

2021년의 우리들

짧게 돌아보고 정리하는 2021년의 생각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릴 때가 되면 올해도 곧 끝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으면 괜히 슬퍼진다. 하지만 시간은 결국 반복되는 주기 안에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흐른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저 담백하게 돌아보고 기록을 남기면 충분하다.


연초에 복무만료를 맞아 쉬겠다고 낸 휴가 기간부터 힘든 일이 많았다. 갑작스럽게 할머니에 이어 할아버지를 보내고. 아버지가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가까이서 보았다. 병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았지만 빠졌던 온몸의 근육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없다’는 것에 서러움을 많이 느낀 한 해였다.

흔들리는 것도 많았었다. 여러 회사의 손짓들로 가득찬 메일함을 바라보며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지금 잡고 있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한 고민도 벅찬데, 누군가의 뒷배가 되어주는 일도 계속해서 맡다보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잘 하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 걸까 물을 곳이 없었다.


하지만 매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소소하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여전히 즐거웠다. 찰나의 힘이 되어주는 노래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아라’를 비롯해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만들었기에 느끼는 아쉬움과 발전 욕구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잔잔하게 여행을 떠났고, 집에서 설거지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새로운 도메인에 대한 경험, 대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의 체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시리즈 장편을 읽고 공감해주는 경험 등… 새로운 것들도 정말로 많았다. 소소한 순간들, 그리고 가끔 벌어지는 큰 경험에 행복하다며 달린 일년이었다.


막 20살이 되었던 해에 집에만 박혀서 몇 달 동안 무얼 해야할지 고민했었다. 그 때 나는 ‘20대 중반 전까지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찾아서 하자’는 약속을 스스로에게 걸었다. 어느덧 약속 시간에 가까워졌다.

이제는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 안에 숨은 하기 싫은 일을 묵묵히 해낼 차례다. 언제나 처음이 그렇듯 잊을 것은 있고, 버릴 것은 버려서,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이고 배워야 한다. 새롭게 내게 작용할 관성을 기대한다.


♪ 이승열 — 길은 정해졌다